한국 보험산업의 선구자로 꼽히는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최근 한국경영학회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도전과 개척 정신을 밑천 삼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모의 땅에서 맨손으로 보험산업을 일궈낸 공로다. 고(故) 신용호 창립자는 일생을 보험과 교육에 힘써온 기업가다. 전남 영암 월출산 기슭에서 자란 그는 폐결핵으로 초등학교에 입학도 못하는 등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17세부터 열흘에 책 한 권을 읽는 ‘1000일 독서’를 실천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그는 한학자이자 애국지사였던 부친, 영암의 항일농민운동과 독립운동가였던 맏형 신용국 선생 등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억압과 망국의 슬픔을 직접 겪은 대산은 중국에서 곡물 유통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며 자금을 지원했다. 우수한 인재를 기르고 민족 자본을 형성해 경제 자립의 기반을 추구하는 일을 평생 사명으로 삼았다. 1958년 교보생명을 설립하면서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창립이념으로 정했다. 부존자원이 없는 현실에서 인적 자원만이 희망이라는 생각에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 사업을 구상한 의지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출시 후 30년간 300만 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았으며 이들은 경제 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서울 광화문의 명소 교보문고 역시 창립이념을 구현한 것이다. 1980년 말 교보생명 광화문 사옥이 완공될 무렵 “돈이 안 된다”는 주위의 숱한 반대에도 그는 교보문고 설립을 밀어붙였다. 현재 회원 수 18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책방’이자 문화거점, 지식 정보의 요람이 됐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교보문고 개점식에 참석해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친구가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기업 경영을 넘어 보험산업과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대산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세계보험협회로부터 보험업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세계보험대상’을, 기업가 중에선 처음으로 ‘금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창안한 혜안의 기업가가 우리 경제에 남긴 족적은 크고도 깊다.
최근 한국 경제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구조적인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발(發) 금리 인상,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깊다. 이럴 때일수록 대산 같은 정도(正道)의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변변한 산업 기반조차 없던 시절, 인적 자본에 힘입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세계 10위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데는 이윤 추구를 넘어 일자리 창출, 교육 등 사회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기업가정신이 주효했다. 이곳저곳에 움트고 있는 기업가의 강한 의지를 북돋아 주고, 미래 세대가 본받을 만한 또 다른 대산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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